귀모양의 손잡이, 긴 주유구가 특징이며, 주형으로 제작되었다. 서기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이 33세의 나이로 요절, 이집트는 프톨레미 왕조를 이루었고, 시리아를 중심으로 한 소아시아 지역은 셀레우코스(셀류커스) 왕조를 이루었다. 약 100년 이상 팔레스타인 지역은 프톨레마이오스 왕가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서기전 200년 유대인들은 셀레우코스 왕가의 통치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서기전 170년대 안티오쿠스 4세는 강력한 희랍화(헬라화) 정책을 추진했다.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이러한 정책의 추진은 곧 종교적 탄압의 형태로 나타났다. 예루살렘 성전 안에 희랍의 최고신 제우스를 위한 제단과 신상을 세우게 하고 제우스에게 제물을 바치도록 강요하였다. 서기전167년 유다지역의 작은 마을 모디인(Modiin)에서 유대인 저항운동이 일어났다. 유대인 하스몬(Hasmon) 가문에 속한 ‘마타디아’와 그의 다섯 아들이 주동이 되어 시작, 이 혁명의 지도자는 마타디아의 다섯 아들 중에 ‘유다’였다. 그의 별명은 ‘쇠망치’라는 뜻의 ‘마카비(Maccabee)'였다. 사람들은 그를 ‘유다 마카비’라고 불렀고 그가 주도하는 혁명은 ‘마카비 혁명’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3년간의 투쟁 끝에 ‘유다 마카비’가 이끄는 혁명군은 마침내 예루살렘을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이들은 곧 성전 산 위에 세워진 성전에 들어가 성전 안의 제우스 신상과 제단을 제거하여 정화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 성전을 새롭게 봉헌했다. 이후 오늘날까지 유대인들은 이날을 ‘하누카(Hanukkah)' 절기로 지켜오고 있다. 우리의 달력으로 12월 중순쯤이 되는 하누카 절기에는 유대인 가정이나 회당에서는 ‘하누카 촛불’을 켠다. 8개 촛대에 매일 저녁 하나씩 촛불을 켜 나가서 마지막 여덟째 날은 8개 촛불이 모두 켜진다. 이러한 촛불의식에는 유래가 있다. ‘유다 마카비’가 혁명군을 이끌고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갔을 때 성전을 밝히는 등불의 기름이 하루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성전에서 사용하는 성유를 만들려면 여러 날이 걸리는데 기름이 하루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유가 만들어질 때까지 하루치 기름은 기적적으로 8일간이나 성전을 밝혔다는 것이다. 이에 근거해서 하누카 절기에 촛불을 켜는 의식이 생겨났다. 그래서 하누카를 일명 ‘빛의 축제(Feast of Lights)'라고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