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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마야왕조

우마이야왕조 [Umayyad dynasty]
무아위야 1세가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하여 세운 이슬람 왕조(661∼750).
옴미아드(Ommiad)왕조라고도 한다. 마호메트의 후계자인 정통 칼리프왕조 말기는, 이슬람 신앙의 동요와 잇따른 음모로 혼란이 거듭되었다. 마호메트의 대항세력인 크라이슈족(族)의 명문 우마이야가(家)는 이를 좋은 기회로 삼아 칼리프권(權) 탈취를 기도하였다. 661년 시리아 총독 무아위야 1세는 마지막 정통 칼리프 알리를 타도하고, 세습제 칼리프정권을 수립하였다. 뒤에 에스파냐에 성립한 ‘후(後)우마이야왕조’와 구별하여 이것을 ‘전(前)우마이야왕조’라고 한다. 정치형태는 차츰 전제주의(專制主義) 색채가 짙어지고, 종교적인 경건이 희박해졌다. 713년 중앙아시아를 제압하고, 거의 동시에 북(北)인도에 침입하였으며, 또한 해륙(海陸)으로 지중해를 공략하고,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였다. 711년 에스파냐에 상륙하여 서(西)고트왕국을 멸하고, 투르 ·푸아티에 전투에서 프랑크군에게 패하였으나, 에스파냐 제패에는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판도는 중앙아시아, 북인도에서 서아시아 전토를 휩쓸고 에스파냐까지 이르렀으며, 제5대 칼리프 아브드 알말리크의 전후(前後) 수대에 걸쳐 최성기를 맞이하였다.
그 동안 완비된 역체제도(驛遞制度) ·밀정사찰(密偵査察)제도는 칼리프의 독재군주권을 강화하였고, 종래의 잡다한 통화(通貨)는 중앙정부가 발행한 순수한 아라비아풍의 디나르 금화(金貨)와 디르함 은화로 통일하였다. 무거운 지조(地租:Kharj)의 부담을 면하기 위하여, 다수의 비(非)아라비아계 주민이 이슬람교로 개종하여 마왈리[被護民]가 됨으로써 국가에 대한 세수입(稅收入)이 대폭 감소하였다. 때문에 이라크 총독 하자지는 그들을 농지로 되돌려 보내고, 당초 부담한 지조와 인두세(人頭稅:Jizyah)에 해당하는 고액의 공조(貢租)를 부과하였으므로 마왈리의 불만이 증대하였다. 특히 우마르 때 지조의무를 지닌 토지소유자가 개종할 때 그 토지는 이슬람공동체의 공유재산으로 하고 원래 소유주는 차지인(借地人)의 입장에서 경영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정책은 성공하지 못하였고 뒤에 수정된 하자지의 제도로 복귀하였다. 결국 징세(徵稅) 때문에 궁핍화한 피정복민의 울분과 호라산의 반란을 이용한 아바스가(家)의 흥기(興起)로 마침내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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