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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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티아

고대 이란의 왕국(BC 247∼AD 226).
왕조의 창시자 아르사케스의 이름을 따 아르사크왕조라고도 하며, 중국에서는 안식(安息)이라고 불렀다. 시리아 국왕 안티오코스(2세)가 이집트전쟁을 일으켰을 때, 이 전쟁의 기회를 타서 독립국가가 되었다. 왕국은 카스피해(海)의 남동지방을 본거지로 하였으나, 차차 북동 이란으로 영토를 신장시켜, 수도 헤카톰필로스의 이름이 서방에 알려졌다. 미트라다테스 1세가 나오면서부터 박트리아·바빌로니아·메디아 등을 정복하여 대제국(大帝國)이 되었으며 미트라다테스 2세 때에는 아르메니아와 북방 인도를 추가하였다. BC 129년 크테시폰이 새 도읍으로 조영(造營)되어 정치적 중심지가 되었다.
파르티아가 발전함으로써 동서의 대국(大國)인 중국과 로마가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 있었고, 중국과 파르티아 사이의 대상로(隊商路)는 훗날 ‘실크 로드’로서 동서를 잇는 대로(大路)가 되었다. 미트라다테스 2세가 로마의 스라와 우호관계를 맺고 로마가 시리아를 차지한 이후 때로는 평화의 시기가 있었다고 하지만, 양국의 서아시아에 대한 주도권 싸움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이로 인해 파르티아의 국력은 피폐해져, 226년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공격을 받고 멸망하였다. 파르티아는 기본적으로 봉건국가였으나, 행정제도의 대부분은 주로 시리아 왕국 시대의 것을 답습하였고, 대국이 되면서 페르시아 제국의 국가이념을 가지게 되었다. 문화면에서는 도시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문화의 영향이 컸다. 그리고 미트라교(敎)와 아나히타 여신교(女神敎)가 전국을 휩쓸었으나, 왕국의 말기에 와서야 본래의 이란적(的) 마즈다교(敎)가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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