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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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코흐바혁명

하드리안 황제(117-138년)의 통치 때에 유대인들의 봉기가 또 일어났다. 하드리안은 130-131년에 동양을 여행하는 중에 예루살렘 성전 터에 쥬피터 신전을 세우고, 유대인들의 할례를 금지시키라는 지시를 하였다. 성소에 이방 신전을 세우고 할례를 금지 당한 유대인들은 분노하였다. 분노한 폭도들은 유대와 예루살렘을 기습하여 점령하여 성전에서 다시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새로 얻은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동전을 주조하고 이 해를 첫 해로 하는 새로운 기원을 세웠다. 이 폭동의 지도자는 당시에 존경을 받던 랍비 아키바(Aqiba)였는데, 유대인들은 그를 (민 24:27)에 예언된 약속된 '별의 아들'로 보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해를 '메시야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는 기독인들은 아키바를 메시야로 보지않았다. 그래서 많은 기독인들이 체포되고 투옥되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로마군의 공격에 유대인들은 서서히 무너져 갔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아키바를 메시야로 보던 백성들은 점차 실망하게 되었으며, 마침내 로마군이 그들을 점령하였다. 이로 인해 성전에는 다시 쥬피터 신전이 세워졌고, 예루살렘에는 이방인들이 거주하고 유대인들의 출입이 중지되었다. 그들은 4세기에 이르러서 아브월(7-8월) 9일에 성전 가운데 남아있는 한 쪽 벽에서 통곡을 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폭동을 지지하던 수많은 율법학자들은 죽임을 당하게 되었으며, 아키바는 처참하게 처형을 당했다. 그러나 이들의 장엄한 죽음은 유대인들을 다시 율법을 중심으로 뭉치게 만들었으며, 선조들의 신앙을 고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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